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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03 22:26
[경향신문-시대의 창](2016.7.14)-시민은 자기 수준만큼의 언론을 갖는다
 글쓴이 : 남지
조회 : 22  
시대의 창]시민은 자기 수준만큼의 언론을 갖는다
남재일 |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민주주의 체제에서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만큼의 정부를 갖는다.’ 이 말은 두 가지 지시적 의미가 있다. 첫째, 정부를 구성하는 수반을 뽑는 주체는 시민 자신이라는 것. 둘째, 뽑아 놓은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 역시 시민의 몫이라는 것. 뒤집어 말하면, 대통령을 잘 뽑고 잘 감시하고 견제해야 좋은 정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뽑는 건 그렇다 해도, 감시와 견제는 시민 개개인의 힘으로는 어렵다. 보다 효율적인 감시와 견제의 방법은 없을까?


 .언론과 시민사회의 암묵적 계약은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주권자인 시민사회가 제안한 계약의 내용은 이렇다. “시민 주권을 위임해준 정부가 공약을 잘 준수하는지, 정책결정을 제대로 하는지, 월권은 없는지, 우리에게 진실을 알려 달라. 그러면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주권자의 권리를 위임해 주겠다.” 언론이 이 제안을 수용하면서 공적 제도로서 언론을 인정하는 사회적 관습이 자리 잡는다.


언론은 시민들에게 공익을 보도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견제의 권리를 갖는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윤리강령을 통해 ‘시민의 대리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문제는 종종 언론탄압의 장본인인 정부도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대리인’이라는 점이다. 둘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돼야 할까?


이상적인 둘의 관계는 시민사회가 심판이 되고 정부와 언론이 상호 견제하는 것, 즉 누가 더 주권자의 ‘일반의지’를 잘 대변하는지 시민의 인정을 위해 경쟁하는 관계이다. 이 구도에서 둘의 경쟁은 공익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두 대리인을 통제할 시민사회의 역능이 요구된다. 시민사회가 무능하면 언론과 정부는 유착하고, 그 결과는 위임권력의 사유화로 인한 기득권의 강화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민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청와대의 KBS 세월호 보도통제를 예로 들어 짚어보자.


세월호 침몰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 비판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누가 봐도 언론통제다. 세월호 침몰은 국가적 재난이 맞지만, 해경의 실책은 정권의 재난이고, 이 사실을 보도하지 말라는 것은 정권에 대한 언론의 견제를 포기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여권은 ‘통상적인 홍보수석의 업무’,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보도협조 요청’ 등의 수사로 사태를 봉합하려고 할 뿐 보도통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전화를 건 당사자인 이정현 의원은 보도통제 사실이 밝혀진 직후 새누리당 대표 출마 선언을 했다. 이건 시민의 역능을 의식하는 태도가 전혀 아니다. 정책홍보와 보도통제를 분별하는 시민의 인지능력을 무시하거나, 보도통제에 대응하는 시민의 저항능력을 무시하는 처사다.


KBS 수뇌부의 태도 역시 다르지 않다. 다른 언론이 이 문제를 대서특필하고, 사내의 젊은 기자들이 줄줄이 비판 성명을 내고 있지만 시종일관 침묵하고 있다. 실질적인 사장 임명권을 가진 청와대를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도 시민은 없다. 오염된 뉴스를 보면서도 꼬박꼬박 수신료를 내는 무지하고 성실한 ‘봉’이 있을 뿐이다. 만약 KBS 사장을 시민이 직접 뽑았다면 보도통제는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처럼 추첨으로 선정된 사장선임시민위원회가 사장을 뽑았다면 기자들이 정권의 눈치를 봐야 할 일은 없었을 것이고, 정권은 통제의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대통령도 직접 뽑는 시민이 수신료 내는 공영방송의 사장을 직접 뽑겠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시민의 역능이 발휘돼야 정부와 언론이 시민을 인정 주체로 상호 견제하는 관계가 정착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시민은 자기 수준만큼의 언론을 갖는다. 정치권력의 언론탄압을 남의 일로 치부하면 검열된 뉴스를 볼 수밖에 없다. 법조전관비리, 사드 배치, 전기·가스·수도 민영화 등과 같은 공적 사안보다 연예인 사생활 보도에 열광하면 겉만 화려하고 속이 텅 빈 선정적 언론을 만나게 된다. 그 반대도 있다. 탐사보도에 대한 후원과 지지는 더 올바르고 심층적인 언론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좋은 기사를 퍼 나르고 나쁜 기사를 비판하는 댓글은 굽은 언론을 정론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시민의 역능을 발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작은 수고를 너나없이 모두 타인에게 미루는 사회에서 “민중은 개·돼지”라는 폭언은 비단 영화 속 캐릭터나 만취한 관료뿐 아니라 권력의 상층부 어디서나 터져 나올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시민권이 발휘되지 않고 시민다움의 덕성이 실종된 사회에서 증상처럼 나타나는 인종주의적 외설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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