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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03 22:31
[매일신문-소리와 울림](2016.6.30)- 반려, 죽음을 배웅하기
 글쓴이 : 남지
조회 : 20  
[소리와 울림] 반려, 죽음을 배웅하기 

1973년 노벨상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동물학계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린다. 그의 이론적 업적 중의 하나는 조류의 행동에 관한 ‘각인 이론’이다. 이 이론의 요체는 알에서 깨어난 조류는 생후 13~16시간 사이에 본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각인하고 평생 쫓아다닌다는 것. 로렌츠는 이 사실을 검증하기 위해 오리로 실험을 했다. 한 어미가 낳은 알을 두 군으로 나누어 다른 방식으로 부화시켰다. 어미가 품은 새끼들은 어미를 쫓아다녔지만, 부화기에서 태어난 새끼들은 로렌츠를 어미로 알고 따라다녔다. 어미에게 이 새끼들을 데려 놓아도 새끼들은 다시 로렌츠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고 한다.

당신을 어미로 알고 따라다니는 새끼 오리들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은가? 귀엽고 황송하지 않을까? 산고를 겪은 것도 아닌데 무작정 믿고 따라주니 말이다. 또 오리가 사람을 어미로 알고 따라다니는 이 광경을 먼발치서 지켜보면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은가? 평화가 느껴지지 않을까? 생존을 위해 서로 잡아먹어야 하는 먹이사슬의 가혹한 운명이 일순간 멈춘 느낌을 주니 말이다.

로렌츠의 실험을 보고 여러 사람이 영감을 받았다. 사람과 동물은 친구가 될 수 있다! 1983년 로렌츠의 탄생을 기념해서 열린 학회에서 애완동물을 반려동물로 부르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 후 동물을 인간 삶의 반려자로 받아들이자는 새로운 문화가 빠르게 확산됐다.

애완은 상대를 귀여운 ‘대상’으로 여긴다. 정서적 교감보다 귀여움의 탐닉이 우선한다. 상대를 인격체로 인정하기 않기에 아무리 호의적인 감정을 쏟아부어도 상대의 의사를 배려하지 않는 일방향의 배설일 뿐이다. 이런 태도는 상대에게서 도구적 유용성만을 보기 때문에, 늙고 병들어 추해지면 유기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애완동물 유기는 동물과 맺은 관계가 귀여움을 착취하는 정서적 포르노그래피였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순간이다. 포르노 중독이 이성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독이 되듯이, 애완동물 탐닉 경험 역시 타인과의 정서적 교감을 오히려 방해한다. 타인의 내면에 대한 이해가 일어나기 전에 외형에 감각적으로 도착되는 성향을 선행 학습하고 체화하기 때문이다. 

반려는 인생행로의 길동무를 의미한다. 진정한 벗은 고통의 자리를 함께한다. 반려자에 대한 최고의 예의는 죽음을 배웅하는 것이다.

상대의 죽음을 힘겹게 지킨 사람은 둘의 관계를 반려로 확신한다. 관계에 대한 확신은 자신의 진정성을 스스로 승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존감의 가장 뿌리 깊은 근거가 된다. 자신의 진정성에 대한 자신감만큼 타인과 호혜적인 친밀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도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반려자의 죽음을 배웅하는 경험을 하지 못하거나 노년에 한 번 한다. 반려동물은 젊어서 죽음을 배웅하는 경험을 선물하는 소중한 존재다. 어린 시절을 반려견과 함께하다 죽음을 배웅한 아이는 커서 타인과의 반려 관계에서 책임감을 발휘하고 인문적 소양을 갖춘 성인으로 성장할 확률이 높다. 생명에 대한 염려는 인문적 소양과 윤리적 삶의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반려 문화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넘어 동물을 매개로 한 인간의 관계 맺음에 대한 기대까지 포함한다. 개를 버리는 것은 개에 대한 폭력이자 개와 반려 문화를 일구어가는 타인들의 노력에 대한 부정이다. 역으로 유기동물 입양과 같은 성숙한 반려의 문화를 더불어 나눔으로써 우리는 타인과 교감할 수 있다.

그동안 너무 많이 버리고, 어리고 예쁜 것만 좋아하고, 버려진 아이들은 외면했다. 이제 그만 버리고, 버릴 거면 데려가지 말고, 버려진 아이들 입양해서 씻기고 먹여서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무엇보다 이승의 동구 밖까지 따라나가 떠나는 길을 배웅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늘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웠다고.
 
 
남재일 경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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