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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03 22:35
[경향신문-시대의 창](2016.6.16)- 생리대와 저출산
 글쓴이 : 남지
조회 : 37  
[시대의 창]생리대와 저출산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최근 생리대 논란이 인터넷을 달궜다. 시장의 절반을 점유하는 유한킴벌리의 기습적인 가격 인상에 항의 글들이 쏟아진 거다.


 .돈이 없어 수건으로, 화장실 휴지로, 심지어 신발 깔창으로 생리를 처리한 사례가 공분을 일으켰다. 몇몇 지자체가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생리대를 지원하겠다고 나섰고 학교에 생리대 비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그런데 서울시의 조사결과 이들은 학교에서 생리대를 받아가는 걸 창피하게 생각했단다. 가난과 생리 어느 게 부끄럽다는 것일까? 물론 둘 다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모든 가임기의 여성은 생리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생리하는 여성의 몸속에서 만들어져 세상에 나온다. 세상에 나와서도 젖을 물고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자란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교육하는 일은 주로 여성들이 담당한다. 학자들은 여기에 ‘재생산’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노동자가 돼서 생산 활동을 한다. 재생산이 없으면 생산도 없다. 그럼에도 재생산은 남성의 생산보다 가치절하돼 왔다. 생리휴가는 재생산의 상징이 아니라 생산의 흐름을 단절시키는 장애물 정도로 여겨졌다. 재생산의 담당자는 사회적 권리를 가진 인격적 주체로 온전한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다.


여성성을 일인분의 주체성으로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는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태도를 불러온다. 말끔한 여성의 신체를 몽상하는 남성의 성적 환상에 생리는 몰입을 방해하는 이물질일 뿐이다. 생리가 재생산의 상징으로 해석될 기회를 갖기도 전에 즉각적으로 공론의 장에서 배제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여학생들이 생리를 부끄러워하는 것도 여성의 재생산 활동이 평가절하되고 여성의 신체가 성적 대상화되는 사회 분위기를 의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사회에서 자라난 여성이 재생산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생산 활동이 개인적으로 훨씬 효율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능력 있는 여성들은 하나둘씩 재생산 현장을 떠났다. 지난해 한국의 출산율은 1.24명,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대로 가면 2019년부터 인구가 줄기 시작한다. 인구가 줄면 경제 전반이 침체하고, 고령화로 각종 사회문제가 야기된다. ‘저출산은 국가비상사태’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국가비상사태니까 정부가 나서야지. 그런데 미온적인 처방만 나온다. 뭔가 여성들이 해주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여성들이 스스로 재생산의 현장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최근의 한 조사에서 20~40대 여성의 72%가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했단다. 그렇다면 이들이 스스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고, 이 사회가 딸아이도 살아갈 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생산 현장에서 여성의 권리와 재생산 노동에 대한 가치의 동시 인정이 전제돼야 한다. 남녀가 적대하지 않는 호혜적인 양성평등으로 가는 길은 이 길뿐이다.


지금처럼 양성평등 논의가 재생산에 대한 가치인정 없이 생산 영역의 여성의 권리 인정에 쏠린다면 남녀는 적대하기 마련이다. 기득권자인 남성의 저항이 여성에 대한 무시와 혐오의 감정으로 분출되기 쉽기 때문이다. 섬마을 학부모·주민 집단 성폭행 사건이나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의 기저에 여성에 대한 무시나 혐오가 자리 잡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이 무시와 혐오의 뿌리는 결국 재생산에 대한 낮은 사회적 평가이다. 이 때문에 모든 여성 문제의 해결은 재생산의 정당한 가치 인정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이 뿌리 깊은 편견을 어떻게?


여성들의 ‘출산 파업’이 심화돼 저출산 사회의 뜨거운 맛을 국가적 차원에서 보고 나면 재생산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할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 사태를 방치하면 사회적 손실이 크다. 미래를 내다본다면 재생산이 생산만큼 중요한 공공선이며 남녀 모두의 일임을 지금 인정하고 남성이 더 많은 역할을 하는 게 맞다.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려면 파격적인 여성 정책이 나와야 한다.


만약 정부가 이번 생리대 논쟁을 계기로 모든 가임여성들에게 생리대 값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내놓는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여성의 재생산 활동의 사회적 기여를 사회 구성원 전체가 인정하고 감사해한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재생산 자체에 대한 가치 인정을 촉진하고 남성들의 육아 참여를 유도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여성 대통령의 여성 정책은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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