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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03 23:19
[경향신문-시대의 창](2016.4.21)-비웃음, 혐오, 그리고 투표.
 글쓴이 : 남지
조회 : 62  
[시대의 창]비웃음, 혐오, 그리고 투표
남재일 |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 미소는 상대에게 ‘적의 없음’을 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표현 수단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모든 웃음이 호의를 뜻하진 않는다. 웃음은 기묘한 이중구조다. 웃음을 철학적으로 해명한 앙리 베르그송은 ‘악의 없는 잘못이나 사소한 실수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따뜻한 징벌’로 웃음의 구조를 풀어냈다. 웃음은 “당신 실수한 거야. 그런데 괜찮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 힘내”라는 속뜻이 있다는 거다. 이보다 좋은 사회통합의 수단이 있을까? 잘못에 대한 지적은 사회 규범을 강화하고, 장본인에 대한 포용은 사회적 유대를 강화해준다.


 .웃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직업적으로 남을 웃기는 것은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웃음은 웃음의 대상이 돼줄 ‘바보’가 필요하고, 사람들은 이 악역을 피하려 한다. 어떻게 이 악역을 채울 것인가? 희극의 윤리는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가장 윤리적인 태도는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허구적 바보를 창조해 ‘따뜻한 징벌’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 대척점은 이미 부당하게 조롱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를 ‘바보’의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겨난 웃음은 포용의 따뜻함이 사라지고 차가운 징벌만 남는다. 이건 웃음이 아니다. 비웃음이다. 상대의 ‘실수나 잘못’에 대한 지적을 자기우월의 근거로 나르시시즘에 빠질 때 발생하는 배제의 표정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어떤 웃음을 짓고 있는가? 비만한 신체, 균형이 맞지 않는 여성의 얼굴, 키 작은 남성, 사투리 쓰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비웃고 있진 않은가? 최근 한 유명 개그맨은 한 부모 자녀까지 비웃음의 대상으로 끌어들였다. 사회적 실수나 잘못이 아닌 고유한 정체성이 어떻게 웃음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사회적 약자를 향한 폭소는 감정표현이 아니라 감각적 탐닉이다. 약자를 공격할 때 느끼는 동물적 쾌락에 끌려 웃음이라는 가면 뒤에서 행사하는 비열한 폭력일 뿐이다. 약자에 대한 비웃음은 동물화된 사회의 전형적 증상이다. 동물은 자극에 반응할 뿐 상대에 호응할 줄 모르지 않는가.


혐오는 비웃음과 정치적 한 패거리다. 무구한 약자를 부정해서 자신의 위신을 세우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혐오는 분노와 비슷해 보여도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분노는 일차적으로 부당한 상황에 대한 감정이다. 화를 내는 것은 상대에게 나의 상태를 적극 알려서 부당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비록 적대적 태도를 취하지만 상대를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인격체로 인정한다는 얘기다.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화를 선택하는 것은 다툼에서 기선 제압을 위한 일종의 ‘몸집 불리기’이지만 목적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한 것이다.


강자의 분노는 즉각 해소된다. 사회에 상존하는 분노는 대개 약자의 것이다. 어떤 사회에 분노가 만연하다는 것은 해결책을 찾지 못한 약자의 억울함이 가득하다는 얘기다. 이 분노가 억울함을 초래한 원인제공자를 직접 겨냥할 때 분노는 정치적 사건을 촉발하는 힘이 된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분노는 약자가 용기 내어 발휘하는 주체적 감정일 수 있다.


혐오는 상대를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고 추한 사물로 대하는 감정적 태도이다. 애초에 해결해야 할 상황의 부당함이 없기 때문에 상대의 반응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상대를 멀리 내치는 데 집중한다. 여기서 격한 감정은 대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해명을 하든지 나는 거기에 관심이 없다’는 자기다짐을 위한 것이다. 혐오의 뿌리는 정치적 배제다. 확정된 정치적 차별 위에서 차별의 흔적을 지우려는 정서적 코스프레일 뿐이다. 그래서 혐오는 외관상 상황을 완전히 지배하는 강자가 약자를 향해 뿜어내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하지만 강자가 약자에 대해 그토록 강한 적의를 느낄 이유가 있을까? 아니다. 강자는 약자에게 무관심하다. 사회적 약자를 추한 사물로 멀리함으로써 강박적으로 우월감을 추구하는 것은 가해자 강자를 닮고 싶은 피해자 약자의 태도이다. 혐오는 부당함을 초래한 분노의 원인 제공자를 모르거나 적대할 용기가 없는 피해자의 적의가 사회적 약자로 전이될 때 발생한다. 거기서 비롯되는 심적 불편함을 격한 우월감으로 가리지만 결국 사회적 약자의 정치적 항변을 원천봉쇄하는 데 본의 아니게 동원되는 청부폭력으로 끝날 뿐이다. 역사 속의 인종주의를 추동하던 혐오의 주체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여당대표가 표를 얻기 위해 동성애 혐오를 부추기고 한 부모 가정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사회는 일상의 혐오와 비웃음을 중단하는 것이 투표만큼이나 절실한 정치참여이다. 4년에 한두 차례 사지선다형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는 뭔가 허전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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