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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03 23:26
[경향신문-시대의 창](2016.3.24)-인공지능의 욕망과 정치
 글쓴이 : 남지
조회 : 48  
[시대의 창]인공지능의 욕망과 정치
남재일 |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알파고의 충격이 꽤 컸다. 이세돌의 4 대 1 패배는 의외였다. 이미 유럽 챔피언이 전패했지만 그는 다를 거라 기대했다. 경우의 수가 무한대인 바둑 최강자는 기계적 계산을 넘는 창의적 직관의 산물일 거로 믿었기 때문이다. 대국이 끝나고 상황은 급변했다. 앞으로 누구도 알파고를 이기기 어려울 거란 믿음이 조용히 대세가 됐다.


 .이세돌의 1승이 위대한 승리로 오히려 칭찬 받기까지 한다. 맞다. 그의 1승은 인간이 기계를 상대로 거둔 마지막 승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세돌의 진정한 공로는 1승보다 4패에 있지 않나 싶다. 그가 5승을 했다면 멀리 풍문으로 떠돌던 인공지능의 존재를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알파고를 통해 인공지능의 실체를 목격한 대중의 반응은 경이와 두려움이 교차한다. 낙관의 극치는 인간보다 더 유능하지만 철저하게 순종하는 기계노예의 발명이다. 비관적 전망의 극은 기술자체의 파생 효과나 오작동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공격하는 상황이다. 둘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유능한 기계노예를 욕망할수록 반란에 대한 주인의 염려는 깊어지는 법이다. 하지만 당장 이런 염려는 필요 없다. 인간을 공격하는 사이보그의 탄생은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로는 어렵다. 하지만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진행 중이다. 인간이 컴퓨터 앞에서 하는 웬만한 정보처리 업무는 인공지능이 대체 가능하다. ‘내 일자리를 컴퓨터가 빼앗지 않을까’하는 염려는 괜한 것이 아니다. 블루칼라 일자리는 사태가 더 심각하다. 배달용 무인드론과 로봇이 노동자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최근 호주에서는 피자배달용 로봇까지 등장했다. 문제는 이런 미래의 상황에 대한 염려는 많은데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중립적이고 그 자체로 유익하다고 생각하면 인공지능이 내 일자리를 가져가는 것을 당연시할 수 있다. 사이보그가 인간을 공격하는 상황도 유능한 기계노예를 부리다 초래된 불가피한 오작동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과학기술은 모든 인류에게 혜택을 주지만, 평등하게 주는 건 아니다. 원자력 발전으로 전기 요금이 싸지면 모두 혜택을 보지만, 가장 많은 혜택을 보는 것은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이다. 후쿠시마처럼 원전이 파괴되면 피해를 가장 많이 보는 사람들은 인근 주민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농어민이다. 기업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대개 멀찍이 떨어져 있다. 혜택을 보는 정도와 피해를 입는 순서는 별개다. 물론 이건 우연이 아니다.


과학기술은 정치적이다. 더 많은 이윤과 더 공고한 지배의 욕망이 기술을 선택하고 개발하고 이용한다. 인공지능이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기업이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전장에 전투로봇이 등장한다면 역시 강대국 병사의 아바타로 약소국 병사를 무차별 공격할 것이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 현재의 국제정세가 지속된다면 사이보그에게 인간이 공격당하기 전에 인간이 사이보그를 이용해 다른 인간을 공격할 개연성이 더 높지 않을까? 지금 우리는 사이보그의 기술적 오작동이 아니라 정상적인 작동 자체를 염려해야 한다.


문제는 사이보그가 아니고 인간이다. 이세돌의 상대는 알파고가 아니라 개발자 허사비스다. 대국 결과는 인간에 대한 기계의 승리가 아니라 바둑에 대한 컴퓨터프로그래밍의 승리다. 나아가 소액으로 인공지능 기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홍보한 구글의 승리다. 대국 기간 중 구글의 시가총액은 58조원이 늘었다. 이세돌이 받은 대전료는 17만달러다. 자본의 간지(奸智)가 놀랍지 않은가. 나는 알파고보다 허사비스가, 허사비스보다 구글이, 구글보다 구글 같은 기업이 인공지능 개발의 견제 받지 않는 주체가 되는 현실이, 이 현실보다 이 현실을 마주하는 사회가 무관심과 무능에 빠지게 되는 것이 더 무섭다.


정의로운 사회는 힘들고 위험한 일을 대체하는 데 과학기술을 우선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이 요양병원에서 간병을 하거나 고공 공사판에서 노동을 하는 사이보그를 개발할 것 같지는 않다. 과학기술은 인간을 편리하게 하는 데 재능을 발휘했지만 행복하게 하는 데는 무능했다. 인간의 행복을 위한 인공지능이 가능하려면 사회가 적극 개입하고 견제해야 한다. 군사적 이용의 금지와 위험노동이나 공익적 이용에 대한 우선 수혜 규약 등의 법제화가 필요하다. 인간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술의 적용이 정의롭지 못하고 수혜가 불평등해서이다. 기술의 사회적 성격과 수혜 양상을 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의 몫이다. 참정권의 지혜로운 사용만이 사이보그를 착한 길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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