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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03 23:31
[경향신문-시대의 창](2016.2.25)-애국주의와 국가폭력
 글쓴이 : 남지
조회 : 18  
[시대의 창]애국주의와 국가폭력
남재일 |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왜 이리 허무하기만 할까요? 내 청춘은 다 지나서 그럴까요?” ‘유럽간첩단 사건’으로 1972년 사형된 케임브리지대학 박노수 교수의 딸이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간첩의 딸’로 40년을 살아야 했던 고단함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는 그 멍에를 벗는 날의 소회를 ‘허무’라고 한다. 그는 왜 치유와 회복의 감정을 느낄 수 없었을까?


 .국가폭력은 대의명분을 앞세워 자행되기에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나 싶을 만큼 잔혹하다. 그럼에도 책임지는 주체가 없다. 국가는 잘못을 인정하는 데 미온적이다. 기껏해야 뒤늦은 피해자의 법적 명예회복 정도다. 가해자 처벌은 늘 지지부진하다. 국가폭력의 가해자는 폭력을 휘두를 땐 “애국”을, 책임져야 할 땐 “명령대로 했을 뿐”을 내세우며 국가주의 이념의 등 뒤로 숨는다. 그래서 국가폭력은 피해자는 선명한데 가해자는 모호한 윤리적 진공상태로 방치돼 있다. 사정이 이러니 40여년 만에 ‘간첩의 딸’이란 멍에를 벗는 순간에도 허무할 수밖에.


국가폭력 피해의 온전한 회복은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국가의 공식적 잘못 인정과 보상, 둘째 가해자에 대한 처벌, 셋째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위무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나마 자국을 상대로 한 피해는 법적 명예회복이라도 가능하지만, 일본군 위안부나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처럼 타국을 상대로 한 경우는 피해사실 자체를 인정받는 것조차 어렵다. 그래서 국가폭력은 예방이 최선이다. 하지만 미력한 시민 개개인이 어떻게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을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시민 개개인은 국가의 대리인인 정권을 뽑는 과정에 유권자로 참여함으로써 국가폭력에 관여한다. 시민 개개인이 국가폭력의 예방을 실천한다는 것은 우선 좋은 정권과 나쁜 정권을 분별하는 데서 시작된다. 좋은 정권은 애민(愛民)을 실천한다. 국가를 전체 국민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반면 나쁜 정권은 애국하라고 국민을 닦달한다. 국가를 정권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어느 좋은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기에 앞서 효도하라고 매를 들던가?


시민 개개인의 두 번째 국가폭력 관여는 정권이 애국을 내세워 국가폭력을 행사할 때 폭력의 주체 혹은 방관자로 동원되면서 일어난다. 국가폭력의 명분은 언제나 ‘애국’으로 수렴된다. 그런데 ‘애국’은 위기의 국가에 약이 될 순 있어도 정상적인 국가의 일용할 양식이 될 순 없다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약소국의 민족주의는 생존을 위한 저항의 수단이었다. 애국심은 국가를 구하는 약이 됐다. 하지만 강대국의 민족주의는 더 많은 자원을 갖기 위한 침략의 명분이 되거나, 국내의 정치적 불만을 억압하는 수단이 됐다. 나치의 경우처럼 이런 애국주의는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독이 된다. 어떤 상황에서 강조되느냐에 따라 ‘애국’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정당한 애국심과 부당한 애국주의를 명확하게 분별하는 것이 국가폭력 예방의 관건이 된다.


진짜 애국자는 국가가 사라질 위기에, 나라 자체가 다급하게 구해야 할 대상이 될 때,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애민의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 될 때 나타난다. 소설 <칼의 노래>가 바로 그 얘기 아닌가. 반면 애국주의로 국민을 동원해서 정치적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선동가들은 국가의 위기와 무관하게 등장한다. 나타나서 전쟁분위기로 공포를 조장해서 국가의 위기를 만든다. 그렇게 함으로써 종국에는 정말로 국가를 위기로 몰고 간다.


한반도 주변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내부는 애국주의 광풍이 불고 있다. 공중파는 연일 북한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부추기고 있다. 모든 애국의 방향이 전쟁을 염두에 둔 군사적 애국주의로 수렴되고 있다. 이게 지금 시점에서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될까?


세계 최강 군대 미군이 주둔하고 연간 국방비가 30조원에 이르는 대한민국을 국방비 1조원의 북한이 선제 침공하는 것은 우리 외교력의 완전한 파탄을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러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애국은 전쟁을 방지하고 강대국 사이에서 실익을 챙겨서 국민의 행복을 증진하려는 외교적 노력이지 군사적 애국주의의 강조가 아니다. 정상국가에서 정당한 애국심은 시민 개개인이 ‘민주적 삶’에 충실함으로써 사후적으로 발현된다. 일사불란하게 국민이 국가를 사랑하는 나라보다 시민들이 서로 믿고 협력하고 사랑하는 나라가 훨씬 부강한 국가가 될 공산이 크다. 애국주의 구호가 소리 높다는 것은 또 다른 국가폭력이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징후란 사실을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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