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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09 17:42
[씨네21_아가씨 vs 건달] 2004-08-27_가장 도덕성이 결여된 바람둥이는 누구? <누구나 비밀은 있다>
 글쓴이 : 남지
조회 : 217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25833 [80]

건달, <누구나 비밀은 있다>에서 왕인 척하는 소시민을 보다

흔히 남성 바람둥이의 원형은 세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유형은 ‘소시민형’ 바람둥이다. 이 자는 영자, 순자, 금자 이렇게 세명의 애인을 동시에 관리한다. 세명의 애인 각각이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믿게 해야 하는 이 남자는 3인분의 작업량 때문에 언제나 몸이 분주하다. 뿐만 아니라 혹시 방심한 사이 영자를 순자라고 부르는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 호칭을 ‘자갸!’로 통일하는 등 머리도 부지런히 굴려야 한다. 기획력, 성실성, 논리적 치밀함, 그리고 중간 이상의 경제적 수입과 외모가 뒷받침돼야 성공적인 ‘소시민형’ 바람둥이가 될 수 있다. ‘소시민형’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흔한 유형이며 가장 도덕성이 결여된 유형이다. 이들에게 바람은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증명을 위한 것이다. 이들이 복수의 애인을 통해 얻는 것은 남성으로서의 유능함에 대한 확인과 성적 쾌락이다. 이 두 가지 전리품은 모두 자기 자신만을 향해 있다. 그가 복수의 애인을 관리하는 유능함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무능하면 여성에게 버림받는다는 가부장적 거세 콤플렉스와 싸우기 위해서이다. 그는 이 전투에서 에너지를 소진하기 때문에 여성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 데 소요되는 노고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그래서, 그는 여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성적 쾌락밖에 없다는 즉물성의 노예가 된다. 연애도 노동으로 생각하고 거기서 끝없이 비교우위를 추구하고, 비교우위를 가장 적은 투자에서 찾고, 그래서 인색함을 영리함으로 착각하는 ‘소시민형’은 몰가치한 자본주의의 보편적인 욕망의 문법을 남녀관계에 투사시키는 사람이다.

‘예술가형’과 ‘제왕형’은 적어도 여자를 대상화하지 않고 관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소시민형’보다 훨씬 도덕적이다. ‘예술가형’은 절대로 동시에 두 여자를 만나지 않는 대신 여자를 만나는 기간이 짧다. 기간이 짧은 대신 아침 점심 저녁 시도 때도 없이 만나며 헤어지면 깨끗이 잊어버린다. 이자는 연애를 삶의 양식이 아니라 예술로 생각한다. 절대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가정하고 거기에 삶을 소진시킨다. 애인을 자주 갈아치우는 것은 자신이 투사한 이미지를 보고 다가갔다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 끝내기 때문이다. 그에게 바람은 절대적 사랑의 이미지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카사노바와 돈후안 같은 전설적인 바람둥이들은 대개가 이 부류에 속한다. 이들은 비현실적이지만 비도덕적이지는 않다. ‘제왕형’은 연애하다 헤어지면 친한 친구로 남으면서 지속적으로 애인을 한명씩 유지한다. 시오노 나나미가 묘사한 로마황제 카이사르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여자를 성적 차이만 가진 대상이 아니라 남자와 80%가 같은 인간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연애하면서 20%의 차이에 몰입하지만 헤어지면 80%의 공통점으로 인간적 관계를 지속한다. 사실 하나의 성별을 갖고 태어나는 인간이 취해야 할 가장 성숙한 관계 맺기는 남녀 모두 ‘제왕형’ 스타일이지만 이런 바람둥이는 극소수다. 소시민화된 사회에서 이런 관계 맺기에 요구되는 능력과 용량을 가진 사람 자체가 드문데다 ‘제왕형’이 가장 흉악한 바람둥이로 난타당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결혼제도하에서 권장되는 남녀관계의 핵심은 ‘독점’과 ‘영속’이다. ‘제왕형’ 바람둥이는 독점과 영속을 나눈다. 독점하고픈 사랑의 순간에 대해서는 영속을 기대하지 않고, 영속을 추구할 때는 독점하고 싶은 찬란한 사랑의 순간을 욕망하지 않는다. 삶에 정직하고 처신에 지혜롭지 않은가.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소시민형’의 습성을 지닌 바람둥이가 ‘제왕형’의 철학을 설파한다. 외제 차와 세련된 외모로 세 자매를 차례로 유혹하는 이병헌의 철학은 ‘인간은 인간의 부분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언니들도 독점과 영속의 이념을 원론만 인정하고 각론에서는 부분을 즐기는 유쾌한 ‘비밀’을 만들어보라”고 한다. 말하자면,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지혜로 ‘독점을 포기한 영속’을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이미 ‘가정 따로 연애 따로’를 묵묵히 실천하는 남성들처럼? 그런데, 이 영화는 여자를 부분으로 사랑하는 남성의 태도가 관계 맺기에 대한 철학적 성숙함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의 남용에서 비롯된다는 현재의 사실에 너무 둔감한 것 같다. 잘생기고 지적이고 돈 많은 남성이 “나처럼 부분을 즐기라”는 메시지는 ‘나의 쾌락추구에 협조하라’는 말밖에 안 될 수도 있다. 나는 삼형제를 차례로 정복하는 여자 바람둥이가 나와 “변태 갈보년!” 소리와 싸우면서 무슨 말을 전할지 그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