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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02 01:16
절망살인
 글쓴이 : 남지
조회 : 316  

불특정다수에 대한 살의의 표출은 가해자를 알수 없는 피해의식의 발작이다. 피해자는 늘 선명한데 가해자가 없는 그로테스크한 현대적 자본주의의 풍경. 합법적 절차와 제도를 매개해서 이루어지는 교묘한 착취는 가해의 책임소재를 없앤다. 절차는 정당하거나 약간의 불의만을 포함할 뿐이고, 그 절차를 경유한 가해의 행위에 대해 가해자는 스스로 그 어떤 자의식도 갖지 않는다. 원자폭탄을 투하한 비행기 조종사는 "단지 버튼을 눌렀을 뿐이고, 그 명령은 국가가 한 것이다"고 말한다. 국가란 범주는 구체적 개별인격체로 지시되지 않고, 결국 가해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지닌 인격체는 사라진다. "그를 죽인 건 내가 아니고 총알이야" 영화 콜레터럴에 나오는 살인청부업자의 명대사는 절차적 합리성의 이면인 지독한 냉소주의의  칼 슈미트가 말한 기술경제적 사회는 절차가 주체를 대신한다. 가해의 주체는 절차속으로 숨는다. 절차가 진리를 대신하는 이런 사회에서 윤리적 삶은 불가능하다. 윤리 또한 절차적 형상으로 현상되기 때문에 주체의 진정성은 불필요해진다. 윤리는 연기력 시합에 불과해진다.  
 '묻지마살인'이란 명명은 피해의식의 관점에서는 입증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다. 살인자는 '너희들은 살인의 이유를 알지 않느냐", 혹은 "내가 왜 살인하는지 너희들이 말해다오"란 발언을 살인행위로 표출한다. 그러니까 살인자에게 '묻지마 살인'은 '말해봐 살인'이다. 너희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이유를 그에게 묻는 것은 입증부담의 전가가 되는 것이다. 묻지마 살인이란 명명은 살인이 철저하게 개인의 부도덕성에 의해 저질러진 도덕적 파탄이란 규정에서 비롯된다. 이런 유형의 살인에 대해 사회가 책임을 느낀다면, 3자적 관점의 명명인 '절망살인'이란 말이 더 타당한다. 
 
 절망살인과 성폭행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화학적 거세에서 나아가 물리적 거세를 하라는 댓글이 많다. 이 분위기에 편승해 한 신문에서는 사형제도 찬반론을 쟁점으로 부각시키며, 사형제를 지지하는 담론을 은밀하게 생산하고 있다. 억울한 피해자와 가족을 위해 국가가 강력한 응징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해자에게 인권은 필요없다는 주장도 많다.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대중의 반응은 세계어느 곳이나 유사하다. 한국은 좀 더 심하다. 일시적인 정의감의 감정적 분출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반응은 기술경제적 사회, 합리적 절차가 진리를 대체하는 사회에서 익명화된 주체가 보이는 구조적인 일종의 패턴이다. 범죄를 시스템에 내재한 예측가능한 결과로 보지 않고, 시스템 밖의 개인적인 일탈로 보는 것은 시스템의 하자를 삭제함으로써 시스템을 복원하려는 시도이다. 쉽게 말해 범죄에 대해 주체는 일말의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누군가 이 불편한 상황을 빨리 종결지워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 행위의 주체 형별의 주체는 국가가 된다. 사형제도를 옹호하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명분 너머에는 가해에 대해서도 패해에 대해서도 내가 가장 적게 연루된다는 냉소적인 이기심이 있다. 사형은 가해자의 목숨을 빼앗고 피해자와 가족의 울분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해결해주는 것은 구경꾼들의 피해에 대한공포와 가해의 연루에 대한 불안이다. 국가권력이 피해자의 억울함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누가 해결해 주겠냐는 주장은 한가지 사실은 외면한다. 억울한 죽음의 절대다수는 범죄의 피해자가 아니라 국가폭력이라는 전쟁의 피해자들이다. 이들의 억울함을 국가는 절대로 해결해주지 못하고, 해결해주지도 못한다. 사형제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논리는 바로 이 문제, 억울한 피살자의 절대다수가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자란 사실을 우리의 사고 속에서 추방한다. 사형제를 폐지하는 것은, 즉 그 어떤 주체도 타인의 생명을 앗을 수 없다는 선언은 국가폭력에 의한 살해에 대해 윤리적 성찰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지는 남겨준다. 아직 국가간의 전쟁은 윤리보다 이데올로기가 절대적인 준거가 되는 영역이지만, 역사가 발전하면 이 영역 역시 윤리적 검토가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형제 폐지는 가해자에 대한 응징과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위로라는 현재적 차원을 넘어 미래의 보편적 윤리를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가해자도 인권이 있다'는 인권물신론자들의 나이브한 주장은 사형제 폐지론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손해가 된다. 인권이란 개념은 특정 개별적 행위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규범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편적'으로 규정하기 위한 메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인권이 개별적 행위자의 구체적 권리를 지칭한다면 피살당한 사람의 생명권이 가해자의 생명권보다 우선한다.  그래서 살인자의 생명권은 부차적이 된다. 그래서 사형폐지론은 가해자 인권으로 정당화 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