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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2-07 00:20
권력의 본성
 글쓴이 : 남지
조회 : 356  

인간의 본성을 권력의지로 규정한 이는 니체다. 그의 시각으로 보면, 인간의 욕망은 권력욕 한가지로 환원될 수 있다. 학문을 탐구하는 지식욕도 니체에게는 ‘진리의지’라는 권력의지의 한 행태이다. 헌신적인 사랑의 표현도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통어하고자 하는 변형된 권력의지이며, 예술가의 작업도 사물에 대한 지배력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권력의지를 실현하는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 우리가 흔히 좁게 권력욕이라고 부르는 정치권력에 대한 집착은 전형적인 한 방식일 뿐이다.

세상을 이렇게 보면 큰 틀에서 인간행위를 설명하기 쉽다. 끊이지 않는 전쟁과 권력암투, 직장 내의 치열한 사내정치, 가정에서의 가부장 권력, 애인사이의 위계....어느 공간이든 사람 셋이 모이면 그 사이에 편이 생기고, 위계가 발생하는 것을 우리는 늘 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문제는 설명해버리고 나면 꿈꿀 수 없다는 것. 꿈꾸지 않으면 새로운 상황을 창조하지 못한다는 것, 상황을 새롭게 만들지 못하면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길이 원천봉쇄 된다는 것. 그래서 세상에는 그럴듯한 설명으로 손쉽게 수긍을 얻기보다 지난한 실천으로 힘겹게 공감을 구하고 다함께 꿈꿀 수 있는 길을 고민한 사람도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그런 인물이다. 예수는 로마공화국의 정치범 사형수였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설파한 이가 어떻게 정치범이 될 수 있는가? 그런데 로마의 판관들은 사랑=반체제의 등식을 인정했다. 체제에 가장 위험한 것은 인간 본성을 사랑으로 인식하고 집단적으로 이 꿈을 꾸는 것이라고.

요즘의 법률 상식으로 보면 우스개로 보이는 로마 판관들의 논리가 심오한 철학적 결단이라는 사실은 잠시 크리스테바의 생각을 엿보기만 하면 된다. 여성주의 정신분석의이자 철학자인 크리스테바는 모든 정신병의 뿌리는 한 가지 ‘사랑의 결핍’이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인간본성은 사랑이다. 정상적인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충분한 사랑이라는 얘기다. 권력은 부족한 사랑을 채우는 사회적 보충물이다. 권력이 있으면 사람을 곁에 잡아둘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얻기는 쉽지 않다. 목숨을 바칠 정도로 지극히 충성스러운 신하가 있을 수도 있다. 이 순간 권력자는 잠시 마음이 가득 찬다. 하지만 순간이다. 지속적으로 충성스러운 신하의 충성이 뒤따르지 않으면 이 결핍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나마 이런 신하는 드물고 있어도 쓰디쓴 직언을 해대는 충신일 공산이 크다.

대개의 권력자는 다른 길을 간다. 스스로 사랑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 자신과 타인의 비교우위에 몰입하는 나르시시즘으로 나아간다. 나는 있고 타인은 없는 것! 권력의 크기를 최대한 부풀려 느끼면서 결핍을 메우고자 최대한 많은 타인을 불러들여 상주고 벌주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하여 권력자는 여기에 호응하는 자, 권력을 욕망하는 자와 죄짓는 자를 가장 사랑한다. 하지만 권력자의 호출에 응하지 않는 무구한자, 권력 없이 행복한 자족적 인간에 가장 분노한다. 그들이 다름 아닌 서로 사랑하는 자들 아닌가. 사랑은 서로 동시에 결핍을 채워준다. 비교해야할 타자도 희생시킬 타자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권력 자체가 필요 없다. 그러니 사실상 지구 위의 모든 인간을 경계 없이 사랑하라는 의미인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권력의 문법을 경멸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지 않는가.

권력자는 사랑하는 자의 마음상태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여기에 더 집착한다. 세간의 거센 비판을 무릅쓰고 특정 신하를 비호하여 지켜내고자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권력에 대한 집착이 클수록, 사랑에 대한 결핍이 강할수록 이런 태도는 강화된다. 그에겐 불합리한 충성이야말로 사랑의 유일한 대체물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말리면 말릴수록 더 사랑이 깊어지는 청춘남녀들의 사랑처럼 말이다.

모든 정치지도자가 권력자인 것은 아니다. 책임성과 대표성, 견제와 균형을 강조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지도자는 권력자보다 중재자의 캐릭터가 더 적합하다. 중재자는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 나의 비교우위를 확인하려는 자가 아니라, 중재이전에 대한 중재이후의 비교우위를 열망하는 자이다. 때문에 윈윈의 관계를 가정할 수 밖에 없고, 궁극적인 윈윈의 관계인 사랑에 눈 뜨게 된다. 서로 결핍을 드러내고 공유하고 소통함으로써 마음을 채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위대한 중재자가 된다. 예수가 신과 인간의 중재자로서 사랑을 설파했듯이, 위대한 지도자는 인간과 인간의 중재자로서 사랑을 권유하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