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일의 홈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작성일 : 13-08-03 01:44
성재기의 죽음
 글쓴이 : 남지
조회 : 292  

SNS는 성재기의 죽음 이야기로 가득하다. 신문의 오피니언 면에는 그의 죽음에 대한 글이 한 편도 없다. 아무도 그의 죽음을 논의의 대상으로올리지 않는다. 망자에 대한 예의일까? 아니면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마도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직후에 얘기한다는 것도, 성재기란 인물의 행적에 대한 언급도, 그에 대한 언급이 불러올 소란스런 세간의 반응도. 모두모두. 어찌됐건 살아서 "진보는 나보고 꼴보수라하고, 보수는 나보고 찌질이라 한다"고 푸념하던 그는 죽어서도 그 어느쪽도 제편으로 가지진 못하는구나.


그의 발언은 거칠었고, 분노로 가득했다. 표정은 늘 우울한 소년이었다. 그가 죽고 트위터를 보면서 받은 인상은 이랬다.
약자에 깊은 연민을 가진 사람. 의심이 많아서 절대적관계에 쉬이 심취할 사람, 자존심은 강하지만 자존감은 한없이 낮은 사람. 
 그래서 언제나 순수형상을 찾아 죽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죽음충동으로 가득찬 사람. 약자에 대한 연민으로 시작하지만, 대타자의 인정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사람.  그래서 약자에 대한 연민을 강자에 대한 적개심으로 표현하고, 그 피로와 공포와 불안을 의지하기 위해 더 강한
대타자에 한없이 의지해야하는 사람. 남성연대의 행보가 그렇지 않았는가. 여성에게 피해의식을 느끼는 사회적으로 무능하고 실존적으로 허약하기 그지 없는 남성을 연민하고, 교육받은 페미니스트와 성공한 여성가족부와 그들을 옹호하는 진보적인 남성엘리트를 저주하고, 이 피로를 잊기 위해 한국의 대타자의 이데올로기인 반공주의 국가주의의 그늘로 자청해서 들어가고...... 가만 톺아보면 그의 죽음의 과정도 동일하지 않는가. 남성연대의 약자남성을 위해 사비를 털고 그도 부족해 목숨을 건 모금 퍼포먼스를 통해 그는 적대하던 여성들과 남성엘리트들에게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그들에겐 없고, 자신들만 가진 것, 동료에 헌신하는 진정성과 강인함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한강에서 투신하겠다고 예고편을 날리고 실행한 것도 위선적인 그들에게  말의 진정성을 현시하기 위한 것일게다. 그의 언행은 민주와 합리성을 연출하는, 배우고 가진 인간의 우아한 위선을 독선적이고 폭력적인 진정성으로 전복하고자 하는 충동과 적의로 가득했다. 그의 죽음은 장안의 우스개가 됐지만, 그에겐 온전한 존재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이건 희극이 아니다. 가장 우울한 비극이다. 자신이 사랑하고 연민하는 것들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자신이 저주하고 적대하던 것들의 인정을 위한 죽음이었고, 그 인정에 실패한 죽음이었고,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죽음은 그 본질에 있어서 사고사가 아니고 자살에 가깝다고 본다.

성재기와 남성연대는 '극우'라는 명명으로 기존의 진보-보수 구도의 한 변방에 배치되는 걸로 모든 해석을 대체했다. 하지만 성재기와 남성연대는 사건이 아니라 증상이다. 반박이 아닌 해석의 대상이란 얘기다. 모든 극우는 좌파적 문제를 우파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남성연대는 극우단체에 가깝다. 남성연대 사무실에는 "프롤레타리아의 감정과 부르조아의 이성'으로란 슬로건이 걸려 있다고 한다. 이 말대로라면 그건 성숙한 사회주의 혁명가이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에는 정치세력이 이전세력을 전복하면 지배를 위해 이전 지배세력의 헤게모니를 전유한다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하면 지배와 통치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전세력의 기술을 빌려오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애기다. 그러니 남성연대의 슬로건은 성숙한 사회주의 혁명가의 의식이다. 그런데 실재의 남성연대는 '프롤레타리아의 감정과 서발턴(프롤레타리아 보다 더 곤궁한, 정치적으로 전혀 의식화 되지 못하는 무기력한 하층민을 칭하는 스피박의 개념)의 이성으로 " 세상을 돌파하려고 했다. 

 남성연대가 여성을 공격하는 모습만 부각돼서 극우적이고 마초적인 정체성으로 규정되는데, 이건 표면적인 것이다. 언젠가 성재기가 피켓을 들고 시위할 때 거기 써 있던 문구는 "여성가족부의 예산으로 노인, 장애인, 그리고 군인, 경찰, 소방수의 복지에 쓰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그들 스스로 온전하게 형식화하지 못했던 남성연대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노인과 장애인이라는 생물학적 약자(가장 확실한 실존적 약자)를 위해 사회경제적 정체성이 모소호한 문화정치적 약자인 여성을 공격하고, 순진하게도 박봉의 공무원으로 사회에 가장 헌신적인 직종을 수혜에 포함시키는, 혹은 야비하게도 국가권력을 유지하는 하수인을 수혜에 포함시키며 정치적 대타자인 절대다수 이데올로기에 스스로 순응의 제스처를 취하는 모순의 퍼포먼스가 아닌가. 이걸 야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요즘 세상의 담론의 패션을 아는 사람은 절대로 이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공격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반인권적인 태도로 공격받을 것을 알고, 국가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이라면 노인과 장애인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그 해결방법은 비인격체인 사회나 국가로 떠 넘기는 화법을 구사할 개연성이 높다. 말은 맞지만 얼마나 거기에 진정성, 즉 자신을 헌신할 지 표현되지 않는 이런 허세외 위선의 화법이 공론장을 가득 메우는 것이 요즘의 현실아닌가.  성재기가 이런 화법에 알레르기를 가졌다는 것은 그의 트위터를 살펴보면 대략 짐작이 된다. 그는 희미하게나마  가식적인 말이 공론장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 실재없는 공허한 상징의 세계를 의식하지 않았을까란 짐작이 간다. 비록 그걸 분석하고 해체하고 합리적 대안의 화법을 제시할 능력은 없었지만. 그래서 그의 말투는 분노와 확신으로 가득찬 독선으로 일관되지 않았을까?

 성재기와 남성연대는 지배자체에 환멸을 느끼는 실존적인 서발턴의 존재가 많다는 것. 새누리가 잡으나 민주당이 잡으나 나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믿는 젊은이가 많아졌다는 징후로 읽어야할지도 모른다. 비록 정치지형에 휩쓸려 과잉형식화 되어 남성연대의 형상을 하게됐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남성연대 회원들의 존재는  진보-보수의 낡은 대립구도가 적대적 공생을 통해 하나의 지배집단을 형성하는 권력욕의 연대와 공모일 수 있다는, 이사회의 서발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은밀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않을까? 성재기의 시신을 찾는 과정에서 발견된 8구의 시체를 대한 철저한 무관심을 보라. 어느 논객이 거기에 대해 글을 쓴 것을 본적이 있나. 현실정치판에 대한 관심을 참여로 오인하는 것이 지금의 평균적 감수성 아닌가. 사회경제적 약자고 실존적 서발턴인 자살자 이였을 8구의 시체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  바로 성재기의 죽음을 불러온 최초의 뿌리가 아니었을까.

 이글은 성재기를 칭찬하거나 비난하기위해 쓴 글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성재기씨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성재기씨 부디 좋은데 가서 연민도 분노다 다 내려놓고 편하게 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