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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15 23:28
악의 개념
 글쓴이 : 남지
조회 : 224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나치 전범)을 보고
'악의 진부함'에 대해 놀랐다고 적고 있다. 뭔가 강렬하고 개성적일 것 같은 악의 화신이
하급 공무원 처럼"나는 단지 상부의 명령에 따랐다"는 말만 되풀이 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이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책임을 면하기 위해 책임소재를 외부로 돌리는 전략.
둘째는 죽음을 무릅쓰고 숭배했던 상부(지도자 히틀러)에 대한 충성을 과시하는 파시스트적 자아의 재현.
아마 이 두가지가 기묘하게 착종돼 있었던 것이 법정에 선 아이히만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살아남기 위해 책임을 상부로 돌리는 순간에도,
상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상부에 대한 충성을 상연하는 것.
이런 태도는 약함이 강함을 연기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상이다.
그래서 악은 약함이 강함을 상연할 때 나타나는 상황적 현상이다.
바디우는 악을 선의 반대가 아니라, '선의 과잉된 형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삶의 모든 결정은 과잉결정이고, 과잉은 언제나 형식화의 경로를 거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삶은 행위가 거듭될 수록, 톱니바퀴의 기름똥처럼 악을 산출하는
악의 폐쇄회로 속을 방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선악이란 표현은 잘못된 것, 환상을 준거로 실재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환상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악을 준거로 선을 몽상하는 것이 정당한 것 아닐까?
우리가 끝없이 악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악의 개념을 만들어 내는 것은 그것이 이미 실재하는 현실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선이 이를 부정하려는 환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